"오늘 백련사 동백나무 숲의 동백꽃이 핏빛으로 울더라..."
한시적이겠지만 내가 ‘박완규의 남도여행’을 쓰는 까닭은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봐 이러한 여행기를 쓴다. 짊어진 삶이 무거워 어느 날 홀연히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이 글을 쓴다.
사람이 많은 혼잡한 곳은 싫고 호젓한 곳을 찾고 싶은데 어디 한 번이라도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어서 갈 곳을 못 정한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나는 이 여행기를 쓴다.
살다가 힘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딘가로 잠시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지금의 나처럼 차곡차곡 쌓인 지난 세월의 힘듦에서 잠시라도 벗어나야 살 수가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망설이지 말고 이러한 곳을 찾아가 보시라고 이 글을 쓴다.
어제는 많이 피곤했는데도 쉬이 잠이 들지 못했다. 요즘 그런 날이 많다. 그런 날은 밤을 새워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것마저 없었으면 내가 세상을 어찌 살 수 있었겠나 싶다.
요즘 나는 강진 일대에서 다산 선생님의 흔적을 찾아다니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강진에서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상쾌함이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아침에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났다. 동백꽃이 빨갛게 지저귀는 걸 듣고 싶으면 강진 백련사에 있는 동백나무 숲을 찾아가 보시라고.
오늘 내가 찾은 곳은 천년고찰의 강진 백련사다. 다산 선생님이 잠시 머물렀던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전남도청에 근무하는 최근영 선생님이 강진에 가거든 백련사 동백나무 숲에 가서 동백꽃의 낙화를 꼭 보고 오라 했다. 아니 갈 수 없었다.
강진이 참 좋은 것은 가볼만한 곳이 고만고만 가까이 붙어있다는 점이었다. 백련사의 동백나무 숲은 강진 만덕산 기슭에 있다. 오전에 동백나무 숲에 갔더니 넓은 동백숲이 붉은 꽃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동백나무 숲길을 아내와 단 둘이 걸었다. 얼마나 좋던지...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바람소리와 새소리만 들려왔다. 내가 찾고 원했던 분위기 그대로였다. 군데군데 어느 사랑꾼이 만들어 놓았는지 낙화한 동백꽃으로 하트 모양들이 보였다. 꽃이란 모두 이렇게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랑스럽고 예쁘다.
그 예쁜 꽃을 대하면서 이 꽃은 더 예쁘고, 저 꽃은 덜 예쁘다고 말하는 것은 꽃에게 의미 없는 일이고 미안한 일이다. 꽃은 다 예쁘다. 호박꽃은 호박꽃대로 예쁘고 동백꽃은 동백꽃대로 예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다 예쁘다.
여행은 혼자 하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내가 곁에 있으니 참 좋다. 나이가 드니 이제야 철이 드나보다. 아내의 손을 잡고 동백숲길을 말없이 걸었다. 그런데 거기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무가 말을 하고 꽃이 말을 하고 새가 말을 하고 바람이 말을 하고 있었다. 여기 숲길에서의 주인은 우리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새가 주인이었고, 바람이 주인이었고, 나무가 주인이었고 꽃이 주인이었다. 우리는 그저 지나가는 객일 뿐이었다.
이 아름다운 꽃들이 사시사철 피어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꽃은 피고 지는 때가 있다. 꽃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사람에게도 피고 지는 때가 있다. 언제까지나 늘 피어있는 사람 없고 언제까지나 늘 지는 사람도 없다.
꽃이나 사람이나 화무백일홍이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는 1km 남짓한 산길이다. 산새 울음소리와 지나가는 바람소리만 들리는 고즈넉한 산길이다. 이 길을 걷는 사람치고 빨리 걷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이 길을 걸을 때면 천천히 걷는다. 아마도 가는 걸음이 아까워서 그럴 것이다.
우리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 숲길을 걸으면서 가는 길이 아까워서 천천히 걷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 급하게 승진하려 하지 않고 급하게 돈 벌려 하지 않고...
일찍 피어난 꽃이 늘 아름다운 꽃이 아니듯 늦게 핀다고 해서 서러워 할 일도 아니다. 일찍 핀 꽃은 일찍 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처럼 늦게 피는 꽃이 더 향기로울 때도 많은 법이다.
날마다 이렇게 봄이 깊어간다.
봄은 꽃의 다른 말이기도 하고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계절도 사람도 뭔가 새로이 시작할 때는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 자못 경건해진다. 잠시지만 지난 시간 내가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고 다가올 시간을 맞이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했다.
백련사의 동백숲길을 걸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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